▶문신 인구 1,300만 명(보건복지부 추산) 시대. 문신이 대중적인 패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적지 않은 반감 역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3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신과 문신한 사람에 대한 인식에서 “불량하거나 무섭다”고 답한 비율이 66%를 차지했다. 문신 문화에 개방적인 20·30대에서도 각 58%, 61%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답한 비율도 전체의 60%였다.
▶문신은 패션이지만 영구적이다. 유행이 바뀌어도 평생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셈이다. 벗으려 해도 비용과 고통이 만만치 않다.
▶호신(護身)의 의미로 도깨비 무늬를 가슴에 새겼으나 출산 뒤 아이에게 부끄러워 박 원장을 찾아온 30대 여성은 조언한다. “어려서 그냥 남들 따라서 할 수도 있지만 한번 새기고 나면 몸에 계속 남는 거니까, 깨끗이 안 지워질 수도 있고… 최대한 안 하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더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가 포함된 물을 아무렇지 않게 마셔왔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만든 삼중수소죠. ‘메이드 인 USA’ ‘메이드 인 러시아’는 괜찮고 ‘메이드 인 재팬’은 안된다니, 완전 난센스 아닌가요?”
강 교수는 오염수 방류 문제가 정치적 갈등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과거에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논란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적이 있다. 그때 타격을 받은 이들은 일부 수입 업자와 미국이었지만 이번 오염수 논란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이들은 우리 수산물 관련 종사자들”이라며 “우리 국민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될 문제”라고 덧붙였다.
Experts say Japan’s discharge into the ocean of treated radioactive wastewater from the ruined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which began on Thursday, does not and will not pose health risks to people who eat seafood. / But even though the scientific evidence bears that out, not everyone is convinced.
On Thursday, the Chinese government widened a ban on seafood imports to include all of Japan instead of only some regions. The wastewater release has been heavily politicized and fueled deep anxiety over seafood in both China and South Korea, leaving some wondering whether sushi, sashimi, and other products were still safe.
At Noryangjin Fish Market in Seoul on Friday, fish vending associations had put up banners urging consumers to not give in to paranoia.
1914년 혹은 1918년생으로 알려진 정율성은 광주 출신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을 공부한 후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광복 후 북한으로 귀국했지만 6·25 전쟁 중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중국 인민군의 일원으로 돌아와 전선 위문 활동을 펼쳤다.
정율성이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으며,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며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비판했다.
이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며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48년 2월 정율성이 북한의 인민 경제계획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이유로 김일성에게서 받은 상장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박 장관은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며 "광주시 차원의 시 재정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시 재정은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