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나무위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공공기관인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했는데, 삼성전기 이사가 눈여겨보는 젊은이로 점 찍어놨다가 자기가 이직하면서 데리고 간 유일한 부하였다고 한다. 서정진 회장은 당시에 대해 "성실했으며, 현상을 파악한 후 요점을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하다 당시 김우중 회장이 맘에 들었는지 스카웃해 1991년부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하게 된다. 이 때가 불과 34세로 그야말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인물 중 한명. 그러나 샐러리맨 신화도 IMF 외환위기 앞에선 별 수 없는지 1999년 짤린다.(...) 대우그룹이 부도나면서 김우중 회장은 1999년 중국 산동성 옌타이 공장 착공식 참가를 마지막으로 잠적했고[8] 대우자동차 역시 그룹이 부도나자 워크아웃을 신청, 결국 서정진도 직장을 잃게 된다.
이렇게 1999년에서 2002년 사이가 서정진이 가장 힘들 때였다. 그는 1999년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얻어 비슷한 신세가 된 동료들과 함께 창업을 구상하기로 마음 먹는데, 차기 사업에 대한 담론으로 IT부터 해서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는 와중에 그때까지 미개척 오브 미개척인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 10여 명과 함께 자기들 자금 총 130억 원과 초기 투자 470억 원을 받아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재미있는건 이때 생물학 관련 전공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하에 일종의 승부수를 띄웠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오 기술에 대해 전혀 몰랐던 관계로 서정진은 1년간 40여 개국을 다니며 외국의 유명 바이오 연구자들을 방문 인터뷰하는 등[10] 최신 동향을 배운다.
이후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해 미국 벡스젠사와 제휴를 맺으며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기 시작했으며, 2004년 쯤이면 모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에 셀트리온 1공장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업은 점차 번창, 2007년 쯤 되면 완전히 모양새를 갖춤은 물론 인맥도 꽤 많이 얻게 되며, 2009년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벤쳐기업 선두주자로 거듭난다.
결과적으로 20년 남짓한 시간에 셀트리온을 바이오시밀러 분야 대기업으로 키우는 업적을 달성한다.
2020년 12월 31일, 한국 나이로 65세가 될 때 은퇴하겠다는 공약을 지켜, 셀트리온 회장직에서 사임하고 퇴사하기로 했다. 셀트리온 직원들과 출입기자, 주주들한테 이메일로 보낸 고별사에서 "언제나 은퇴를 생각해왔다"며, "원격의료 스타트업에서 새출발하겠다", "셀트리온은 후배들이 알아서 잘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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