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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북한군이나 좌익 세력에 의하여 학살당한 국민.

12-24 2021. 2. 6. 17:13

북한군이나 좌익 세력에 의하여 사망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 척하는 국가.

'서울의대 부속병원 학살 사건' 내용을 보면 치가 떨린다.

 

그런데, 좌익 세력 중 사망한 자는 찾아서 보상을 해 주는 국가.

 

 

인용 글은 아래 기사에서 발췌함.

1950년 10월.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삭금마을에 사는 박규남(당시 26세)은 삭금교회 장로였으며 대한청년단 활동을 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박양운(당시 26세)은 완도군 청산도로 피신하기 위해 마을 초소 아래 바닷가에 배를 준비해놓고 숨어 있었다. 하지만 소재가 발각된 박규남과 박양운은 지방 좌익에 의해 바닷가 부근으로 끌려가 구타 당해 죽임을 당했다.

이후 남은 가족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마을 야산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이들도 발각돼 마을 입구 바닷가에 있는 옥돌바위로 끌려가 몽둥이로 구타당해 죽었다. 죽은 이는 모두 8명이었다. 1950년 10월 3일과 4일에 있었던 일이다. 박규남·박양운 두 집안에서 총 10명이 죽은 것이다. 시신을 수습한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 모두 두 손이 묶인 상태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장과 경찰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1950년 11월 20일 장흥군 유치면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은 장평면 용강리에 있던 장평면사무소 등지를 습격했고, 나머지 빨치산은 장평면 우산리, 봉림리 등지로 가 이장과 경찰 가족 등을 학살했다.

이날 장평면 우산리에 오후 5시경에 나타난 빨치산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마을에 있는 사장나무 앞 공터로 모이라고 했다. 이윽고 주민들이 모이자 이장과 경찰 및 그 가족과 일가 등 열 가족이 호명되었고,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농기구와 몽둥이로 구타당해 학살당했다. 빨치산들은 이들 시신을 사장나무 부근에 있는 방공호로 옮겨 매장하게 했고, 피해자 집을 불 지른 후 마을을 떠났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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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출범한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도 진실규명 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과정에서 보상 대상에서 빠졌다. 가해자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과 지방 좌익이라는 이유였다. 이렇기에 '적대세력에 의한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역차별을 호소한다. 보도연맹사건, 형무소사건, 부역혐의 사건은 전쟁이 발발한 지 반백 년 만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었고 일부 보상까지 되는데, 자신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https://news.v.daum.net/v/202102061609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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